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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The Yasukuni Shrine)

레테210 2015. 12. 1. 01:20

 

 

어두침침한 배경 화면 속으로 노인 한 명이 등장한다.

여든은 족히 넘어 보이는 백발의 노인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이내 옆구리에 찬 일본도를 칼집에서 꺼내어 허공을 향해 휘두른다.

 

 

휘익.

 

 

칼을 칼집에 조심스레 도로 집어넣는 노인.

잠시 뒤 다시 칼을 빼 들고 또 한번 허공을 가른다.

너저분하고 우중충한 대장간을 배경으로

절도 있게 칼을 휘두르는 노인의 백발과 흰 웃옷이 도드라져 보인다.

다음 장면에서 감독은 화염 속에서 벌겋게 달구어지는 칼과 노인의 물집 잡힌 손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자막.

 

"1933년부터 45년까지 12년 동안 '야스쿠니도'라 불리는 8100자루의 군용검이 야스쿠니신사 경내에서 제작되었다" 

 

노인은 그 칼을 만들던 장인이다.

 

 

 

 

<야스쿠니(The Yasukuni Shrine)>는 중국의 젊은 감독 리 잉(李纓)이 만든 다큐멘터리영화다.

안 지는 꽤 됐지만 몇 번이나 볼까 말까를 놓고 망설였다.

야스쿠니를 둘러싼 문제들이라면 어느 정도 익숙한 데다

보고 나서 영 산뜻한 기분이 들지 않을 것이 뻔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 속에는 익숙한 모습이 많이 나온다.

머리에 띠를 두르거나 한 손에 욱일승천기를 든,

구식 혹은 사제 군복을 차려 입은 눈빛 흐린 남자들이

확성기에 대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낭독하기도 하고 노래 부르기도 하고 열 맞춰 경례하기도 한다.

이런 영상으로 시작해서 이런 영상으로 이어졌다면 아마 몇 분 보다가 지루해서 끄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화는 칼 만드는 늙은 장인의 검술 시범 장면으로 시작하고

영화 내내 그와의 인터뷰 장면이 야스쿠니 주변 군상의 모습과 교차 편집되어 나온다.

 

 

 

 

그런데 말이 인터뷰지, 늙은 장인은 말수가 별로 없다.

그는 확성기를 들고 시종 떠들어대는 이들처럼 말이 많지도,

낡은 군복을 입고 행진 퍼포먼스를 하는 퇴역군인들처럼 행동이 과장되어 있지도 않다.

연로한 탓도 있겠지만 행동이며 말이 참으로 조심스럽고 신중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관객이 주로 보고 듣게 되는 것은

인터뷰어(아마도 감독 자신?)의 질문에 대한 노인의 명료한 대답보다는

멋적은 듯한-의미를 알 수 없는-웃음,

그리고

 

침묵이다.

 

특히

2차대전 당시 야스쿠니신사 경내에서 일본도가 제작된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 노인은

한참을 미간을 찡그린 채 깊이 생각하는 듯 하지만 끝내 어떤 분명한 답도 주지 않는다.

 

 

그러던 그가 칼의 성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이 칼로는 사람을 한번 베면 칼날이 무뎌져서 더는 못쓰게 되지 않냐'고 묻자

정색을 하며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두 명도, 세 명도 가능하다고...

혹은 갓 만들어진 일본도의 경우 짚단을 베어 성능 테스트(?)를 하게 되는데

지푸라기 안에는 대나무를 넣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의 '' 대용으로...

 

 

''에 대한 노인의 설명은 대단히 '구체적'이었다.

 

 

노인과 그가 벼려내는 일본도의 서늘한 칼날이

야스쿠니신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과 함께 반복적으로 번갈아 등장하는 것을 보며

관객은 이 영화에서 칼이 무엇을 은유하는지 느끼게 된다.

칼은 야스쿠니신사이며, 야스쿠니신사는 칼이다.

그리고 영화가 칼로 시작해서 야스쿠니를 이야기하다가 천황의 영상으로 끝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어쩌면 감독은 결국 칼=신사=천황으로, 즉 등식을 천황까지 연장시키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기독교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몸이듯, 칼과 신사와 천황은 삼위일체라고.

 

그런데...

 

인명살상을 위한 전쟁 도구인 칼과,

그 칼이 만들어졌고 지금은 그것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유골이 모셔진 신사.

전쟁과 폭력의 은유가 이 둘까지는 무리 없이 이어준다고 치고.

 

하지만 천황은?

 

천황은 2차대전 개전을 명한 적이 없다.

전쟁이 시작되어 구체적인 작전을 승인할 때에도 '어쩔 수 없이' 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유명한 패전선언문도 낭독은 직접 했지만 그 자신은 선언문 안에서 단 한번도 전쟁 발발의 주체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

당시 전장에서는 수많은 일본군들이 '천황폐하를 위해' 죽어갔고

지금도 야스쿠니신사 주변에는 신열에 들뜨기라도 한듯 감격에 겨워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대동아전쟁은 아시아해방전쟁이자 신국(神國) 일본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지만

천황은 전쟁의 주동자로서 책임을 추궁당한 바가 없다.

 

천황은 전쟁과 유리된 존재다.

 

전쟁도구로서의 칼의 성능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노인은

'쇼와천황은 전쟁 재발은 안 된다고 당부했다'며

천황과 칼의 연결은 부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신사'

'신사=천황'

위 등식은 성립될 수 있어도,

 

'천황='

이 등식은 성립될 수 없다.

 

논리적으로는 명백한 모순이지만

칼 만드는 노인의 가슴 속에서는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현 아키히토 천황의 둘째 아들인 아키시노노미야 황태자가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기사 참고 :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1130154240023)

 

이를 두고 우경화와 군국주의의 길로 한참 빠져든 아베내각에 대한 경고표시로 보는 국내 네티즌이 많은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황태자의 발언도 발언이지만 기사의 다음과 같은 마지막 부분이 더 신경 쓰인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2차대전 때도 왕실이 전쟁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왕실은 자녀들에게 평화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코노기 교수의 말은 사실일 수 있다.

천황은 ''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황은 그런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지시하거나 대표해 본 적이 없다.

천황은 대개 비일상적이고 추상적인 무언가를, 대단히 간접적이고 모호하게 표현한다.

그런 가운데 이례적으로 '비교적 구체적'이었던 황태자의 이번 발언은

나름의 의미와 무게를 지닐 것이다.

나는 그의 발언에 담긴 진정성을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진심어린 충언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천황, 혹은 황태자의 선량한 마음

일본 역사를 평화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이끌어오는 데에 있어서

얼마나 유의미한 수준의 기여를 했을까?

어쩌면 그보다는, 현실정치권(막부? 혹은 내각?)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나중에 들이밀 알리바이로서의 역할을-자의든 타의든 결과적으로-주로 맡아온 것은 아닐까?

여태껏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것은 아닐까?

 

황태자나 천황이 대표하는 것은 일본의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내는 명분)지 혼네(속마음)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다테마에란,

혼네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이건 감독이 아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지만.

 

 

,

그렇다는 거다.

 

 

 

 

*영화 속에는 칼 만드는 노인 말고도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위에 언급한 민간 우익 세력들 말고도

당시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나 도쿄도지사였던 이시하라 신타로,

기념식 중간에 난입하여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다 중국인으로 오인받고 부상당하는 일본인 청년,

전쟁 당시 중국에서 '누가 빨리 적 100명의 목을 베나'로 경합을 벌이던 군인 중 한 명의 후손,

강제 합사된 조상들의 유골 반환을 요구하러 찾아온 한국인, 대만인, 그리고 일본인 유족 등...

이 중 일본인 유족은 정토종 절의 주지스님이다.

그는 역시 사찰 주지를 지내던 그의 부친이(일본에서는 승려의 결혼이 인정되며 절 운영도 가업의 하나다)

스님 신분이었음에도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가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해야 했음을 토로하며 유골 반환을 요구한다.

부친의 전사 후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보여주며 제기하는 그의 주장은 이렇다.

 

"유족은 어떤 면에서 아주 모순된 죽음을, 희생을 강요 당했잖아요.

그러면 그 분노와 한 그리고 슬픔을, 국가 책임이니까 국가에 따지고 싶잖아요?

국가에 차출된 거니까.

그런데 국가는 훈장 주고 칭송한다고 하면서 명예의 전사라고 하니

유족은 한을 풀 데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훈장이나 칭송이란 미명 아래 유족의 분노와 슬픔은 전부 거기에 흡수돼 버린다고 할까요?

그런 '도착된 구도'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도착된 구도'라.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진다.

나는 아직 화가 많이 났는데,

더 울고 분노하고 요구해야 하는데,

아직 용서할 수 없는데,

분노와 용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국가는 용서받기 위해 국민 앞에 사죄하기는 커녕

오히려 칭찬해 준다며 내 입을 다물게 만든다.

......비슷한 구도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도 등장했던 것 같다.

사회에서 힘 없는 이들의 분노와 슬픔은

이런 식으로 우물에 독약 치듯 '입막음'되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고 '예상대로' 착잡한 마음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멀거니 보고 있는데

뜻밖에 일본인 스탭의 이름이 많은 것에 한번 놀랐고,

국영방송 NHK나 일본의 무슨무슨 진흥기금 따위의 이름까지 나오는 걸 보고 두번 놀랐다.

상영금지 파문까지 일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에는 일본이 상당 부분 참여했다는 건가..

하지만 그나마 지금부터 10년 전이니 가능했던 일이겠지...

일본 내에서조차 문제가 되었던 현 NHK사장의 발언 등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런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상황은 10년 전보다 단연 나빠지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지 올해로 70년이라지만

이렇게 자유자재로(?) 역전되고 도착하는 용서-사죄, 가해-피해의 기억 속에,

속절없이 퇴화하는 역사 인식 속에,

'과연 무엇이 끝난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산뜻하지 않다.

이 영화...

 

 

 

 

*뱀다리 : 나는 '天皇'이라는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 '일왕'으로 굳이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기독교나 유대교 신자가 아니지만 '여호와' '여호와'라고 하듯, ISIS가 결코 '나라'라 부를만한 것이 아님에도 '이슬람국가(IS)'라고 부르듯, 내게 天皇 그냥 그대로 불러야 하는 하나의 고유명사 같은 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일본식 발음으로 '덴노'라고 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전달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우리식 발음대로 '천황'이라고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