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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田舎のパン屋が見つけた「腐る経済」) 본문
<왼쪽이 친구가 빌려준 원서. 오른쪽은 다 읽고나서 다른 친구 선물용으로 산 번역본>
작년 초였던가, 지인 한 명이 일본에 빵을 사러 다녀오겠다고 했다. 구글지도로 빵집 위치를 보여주는데 이건 숫제 산골 깡촌이었다. 무슨 대단한 빵이길래 바다 건너 남의 나라 두메산골까지 찾아가야 하느냐고 묻자 지인은 천연효모빵을 사러 간다며 그 집 주인이 썼다는 책을 한 권 보여주었다. 천연효모빵집이라면 우리나라에도 많은데…하고 생각하며 표지를 보니,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제목부터 대충 ‘삘’이 왔다. ‘첨가물 범벅 먹을 거리에 염증이 나 좋은 재료만 골라 온갖 정성으로 빵을 ‘빚어내는’ 장인의 고군분투기’ 정도 되겠구나. 그런데, ‘자본론을 굽는다’고? 확실히 호기심은 들었지만 그 호기심과 함께 부담감도 생기는 묘한 제목이었다. 아마도 ‘자본론’ 부분 때문이리라. ㅎ
이후 여기저기서 이 책의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읽을 기회가 없다가 우연히 친구가 원서를 강제로 빌려주어 읽게 되었다. 원제는『田舎のパン屋が見つけた「腐る経済」』(시골빵집이 발견한 ‘썩는 경제’). ‘썩은 경제’라면 쉽게 이해가 갔겠지만 ‘썩는 경제’가 되니 뉘앙스가 좀 달랐다. 다시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실 ‘썩음’은 이 책이 말하고자 알파와 오메가, 거의 모든 것이다. 저자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부조리와 문제의 원인이 ‘썩지 않음’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적에 나는 상당 부분 동의한다.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우주 삼라만상은 ‘순환’해야 하고 그러려면 건강했던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썩어 스러져야’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 순환시스템을 원천적으로 기능부전에 빠지게 만든다. 자연이 썩고 사람의 몸이 썩어갈지언정 단 하나의 성역인 자본(=돈)만큼은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되어 쓸 곳에 쓰이면(=썩어 없어지면) 안 되고 한곳에 차곡차곡 쌓여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먼저 ‘썩지 않음’을 추구해서 생기는 온갖 부조리에 메스를 들이댄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유기농 식재료 도매업체에 취직한다. 그러나 지구와 인간을 생각하는 ‘유기농’의 가치 따위 엿 바꿔 먹은 지 오래인 이 업체에서는 원산지 위조와 리베이트 수수가 횡행한다. 자괴감을 이기지 못하고 퇴사한 뒤 기술을 배우러 들어간 곳은 빵집. 첨가물과 인공천연(?)효모, 농약으로 범벅이 된 빵이 ‘천연효모 무첨가빵’으로 둔갑해 팔려나가는 것을 목격한다. 이 모든 부조리한 상황은 (생산자와 노동자에 대한) 노동 착취라는 공통 분모 위에 성립되어, ‘썩지 않고 무한 증식하는 자본’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로 수렴되고 있었다. 극도의 회의감과 육체적 피로에 찌든 저자의 마음 속에는 ‘작을지언정 진정한 무엇’을 만들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쌓여간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정신적인 유산(맑스의 ‘자본론’ 등)이 그의 등을 떠민다.
2부에서는 그 바람을 하나씩 현실화해 가며 겪는 시행착오와 발견의 과정이 묘사된다. 저자는 아내와 함께 비로소 자신들의 소박한 가게를 열지만 ‘진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녹록치 않다. 물, 쌀, 밀, 그릇 등 모든 것을 발효과정의 주역인 ‘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정해야 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이 ‘유기농쌀’과 ‘자연재배쌀’의 말로(?)의 극명한 차이였다. 균들은 ‘유기농쌀’로 만든 반죽은 가차없이 ‘버려(부패시켜)’ 버렸지만 ‘자연재배쌀’로 만든 반죽은 ‘제대로 썩혀(발효시켜)’ 주었다. 친환경농법의 대명사가 된 ‘유기농’이지만, 그 이면에도 인간의 편의와 효율성 추구라는 그림자가 흐릿하게나마 드리워져 있었던 것. 물론 ‘유기농쌀’조차 비싸서 맘놓고 먹지 못하는 서민들에게야 ‘자연재배쌀’ 따위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라는 게 아직은 아쉽지만…
저자의 헝가리 체류 경험담도 흥미롭다. 사실 이 아저씨, 소싯적 좀 놀았던(?) 모양이다. 사진 속 지금의 모습으로는 무기정학 맞고 편의점 앞에 모히칸컷을 하고 쭈그려 앉아 담배나 꼬나물고 있었을 고딩의 모습이 도무지 상상이 안 가지만..ㅋ 아무튼 세상 만사 아무 관심도 의욕도 없이 삐딱하게만 보던 저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저질 음식이나 사먹으며 권태롭고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의 사이가 평탄할 리 없었다. 가히 인생의 암흑기라 부를만한 시기.
그러던 그에게 우연히 헝가리에서 1년을 보낼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데 사람 일 어찌될 지 모른다고,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헝가리 조폭도 양아치도 아니고, 뜬금없게도 ‘먹을 거리’가 주는 충격이었다. 각종 첨가물 등으로 ‘거짓말’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와 이 재료를 제대로 썩혀 만든 치즈, 와인 등 건강한 발효음식을 맛본 그의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회복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인생의 일대 전환기였다. 이 부분은 영국의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진행했던 학교급식 개선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한다. 정크푸드에 중독돼 있던 아이들이 건강한 재료로 정성껏 만든 ‘진짜 먹을 거리’를 접하면서 불과 수 개월 사이에 몸과 마음이 극적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 BBC 프로그램 얘기다. 심봉사 눈 뜨듯 신세계를 경험한 저자도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쯤 되면 그전의 무의미해 보이던 삶도 이 강렬한 원체험을 더욱 또렷이 느끼게 하기 위한 준비단계였던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볼 일이다. 기승전해외여행-_-???)
천연누룩균에 관한 부분에서는 약간의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발효음식 얘기에는 곧 죽어도 한 마디 끼어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인 이상, ‘누룩균으로 발효음식을 만드는 문화를 가진 나라는 일본 말고 없다’는 대목에서 ‘잠깐만요-_-?’를 외치지 않을 수 있을까… ㅎ 눈에 불을 켜고 인터넷을 마구 뒤졌고, 결론은 저 말을 완전히 뒤집을만한 발견은 안타깝게도 아직 없었다. 하지만 ‘발견 못함=없음’은 아니라는 사실…ㅎㅎ 내 검색 실력 부족 때문이라 굳게 믿는다. ㅋ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돈은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이라고 적고 있다. 아니 알 만한 분이 남의 말을 표절하면 어떡해요? 싶을 정도로 내 생각과 ‘표현까지’ 똑같았다(물론 어디서 멋진 말을 주워들으면 한참 지나 ‘내 표현’인양 태연히 쓰곤 하는 내 버릇 때문이다 ㅋ). 어차피 쓸 돈 이왕이면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곳에 쓰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누군가를 착취해서 이윤을 내는 곳’은 가급적 피해 다닌다. 대단한 정의감과 공명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착취로 만들어지는 물건이나 서비스란 돌고 돌아 나 역시 착취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나름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피할 요소는 너무나 많고 뭔가 살 때마다 매번 그런 것을 고려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언제나 ‘무결점’인 곳을 선택한다고 할 수는 없고 사실은 거의 늘 ‘차점자’, ‘차차점자’를 선택하는 식이다. 하지만 투표를 ‘기권’하지 않다 보면 ‘가끔’은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곳이 나타나준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서로 연결돼 있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가 진짜 빵을 만들기 위한 여정에서 만났던 동지들이 그러했듯.
지인은 기어코 그 산골마을까지 찾아가 빵을 사오는 데 성공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대화는 거의 못했다지만 표정만큼은 한눈에 봐도 만족스러워 보였다. 빵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아서였거나(좀 달라고 해볼걸), 깨끗한 한 표를 행사한 것이 만족스러워서였거나…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생각으로 지금도 열심히 균과 씨름하며 빵반죽을 치대고 있는 분들이 많을 테니 조만간 확인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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