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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장(Shusenjo)

레테210 2019. 8. 9. 18:45

낮 시간을 이용해 CGV 평촌에서 보고 왔다. 

 

제목의 의미를 궁금해 하는 이가 많았고

사전 지식 거의 없이 영화관을 찾은 나도 '주전장(주요 전쟁터)'이 어디라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보고 나니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그것인가, 싶었다.

범죄나 전시 중 벌어진 갖가지 잔학 행위 가운데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말하기를 가장 꺼려하고 금기시하는 것.

바로 '성(sex)'에 관한 것이리라.

인간의 저열하고 추악한 모습이 가장 폭력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성을 이용한 폭력이 전쟁중이라는 명목(?) 하에 대규모로, 일본정부와 군의 암묵적 or 명시적 지시 하에 이루어졌고,

전쟁이 끝난 지 70년도 더 지난 지금, '아직도' 그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맞서는 이들도 있다.

위안부를 둘러싼 세 가지 논점, 즉 '20만 명이라는 규모', '강제 연행 여부', '성 노예 여부'를 둘러싸고

한미일의 학자(사이비 역사가 포함), 법률가, 정치인, 시민단체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갑론을박을 펼친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쉴새 없이 교차하면서 다소 정신없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대신 다양한 주요 플레이어들의 주장을 실제 모습, 육성으로 접할 수 있어 한번쯤 볼 만 했다.

관심 있게 본 장면을 꼽아보자면...

 

감독이 일본계이긴 하지만 국적상으로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최근 위안부 이슈가 미국에서 많이 논의되고 있어서인지

글렌데일시 등 미국내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위안부상 건립을 둘러싼 의견 대립의 양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때 극우세력 멤버였다가 전향한 한 일본계 미국인 여성(이름은 기억 안 남)과의 인터뷰도 인상깊다. 

'일본'에 대한 비판이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들려 괴로웠다는 솔직한 고백이 특히 그랬다.

'민족'이라는 것에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잠식당했던 것으로 보이는 그가 '이건 아니야'하고 결심을 내리게 된 계기는

난징대학살의 실제 자료를 본 경험, 즉 '팩트'였다.

그러나 '팩트'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인상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팩트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매몰되지 말 것'이었다. 

당한 게 많은 우리(한국)로서는 피해 사실을 호소하다 보면 종종 소구 포인트에 매몰될 수 있다. 

어린 소녀, 동원 방식, 인원(규모)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정확한 것이 남아있기 힘든 전쟁 관련 자료 중에는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존재할 수 있다. 

'팩트'라고 믿고 무심코 이용했다가 어쩌다 꼬투리를 잡히면 전체적인 주장의 신빙성과 설득력에 상처를 줄 수 있다.

(가해 행위를 부정하는 쪽은 대개 그런 '디테일' 반박에 능하다)

한국vs일본이라는 민족 대결 구도로 너무 기울어도 이슈가 국제적인 논의의 장에서 보편적인 가치로 부각되기 어렵다. 

요는, 좀 더 '보편적 인권 문제'로, 열린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처럼 쉬운 것도, 또 새롭기만 한 주장도 아니지만

활동가가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영화에서 이런 접근 방식을 권하는 것도 의미 있어 보였다. 

 

영화는 항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회의'에 관해서도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다. 

1년 전 쯤 'LGBT는 생산성이 없다'는 발언으로 일본 국내에서도 물의를 빚은 스기타 미오 의원도 그 중 한 명이다.

영화 속에서는 위안부 피해 주장에 대한 증거가 '증언'밖에 없다며 일축하다가

정작 자신의 주장에도 '증언' 말고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당하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편협한 실증주의와 확증편향의 화신과도 같은 이들이라

이래저래 자기 모순에도 쉽게 빠지고 구설에도 종종 휘말린다. 

할머니들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이들의 주장에 나카노 고이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끔찍한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에게 무엇을 바라는 겁니까?"

헛소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보편적 상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