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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국 WTO 제소

레테210 2016. 1. 23. 22:48

한국은 2013년 9월, 그전까지 계속된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를 이유로 일본 동북 8현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을 사실상 금지시켰다.

그때까지 한국측 대응은 사태의 중대함과 일본과의 근접성에 비춰보아 너무나 미온적인 것이었고,

아직도 솔직히 '수산물만 금지시키면 되나? 농작물은 영향을 안 받나? 폐타이어에서도 방사선이 나온다는데?'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 정도 조치에도 일본측 대응은 참으로 가차없었다.

우리보다 강도높은 규제를 계속하고 있는 나라들, 특히 강대국에는 일언반구 없이 우리에게만 먼저 WTO제소 카드를 빼들었다.

가장 '쉬운' 상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겠지. 아마 우리와의 결과를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도 지렛대로 삼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본 관련 일을 쭉 해오며 이 나라에 대해 나름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WTO 제소는 말만 나왔지 실현될 줄 몰랐다.

그래서 바보같게도, '설마 아니겠지, 맞다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겠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하는 순진한 생각에 야후재팬에 질문을 올렸다.

 

그런데,

그건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돌아온 대답들이 가관이다.

왜 한국만 제소한 거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대략 다음과 같다. (답변자 네 명 중 극렬 혐한 한 명은 아예 논외로 하고 나머지 세 명의 글)

'1. 일본정부가 열심히 '안전성'을 호소하고 다니며 10개국 이상이 규제를 완화, 철폐하는 가운데 한국이 유독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강화가 아니라 사실상 이때 처음으로 규제다운 규제를 한 것인데)

대만에서도 원산지 위조가 계기가 되어 규제가 심해졌지만, 위조한 장본인은 대만인이다. 아무튼 대만도 잘 안 되면 제소할 수 있다.

이렇듯 이들 두 나라가 비논리적으로, 혹은 자국내 사정에 따라 일본의 설득에 응하지 않고,

2. 지금 취하고 있는 조치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나 합리적인 지속기간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3. 제3자 국제기구인 WTO에 판단을 맡길 수 밖에 없다. 억울하면 과학적 근거를 대거나 두 나라도 WTO에 일본을 제소하면 된다.

4. 그리고 애초에 한국 (서울)이 일본 도쿄보다 방사능수치가 높은 건 알고나 하는 소리냐'

 

솔직히, 한두 명 정도, '미안하다'는 말,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없다, 하나도.

당당하기만 하다, 너무도.

이에 하나 하나 반박했다, 오기는 나의 힘!

 

1. 일본정부가 설득하면 그 말을 다 들어야 하나? 규제를 강화하면 제소당해야 하나? 원전이 아직도 오염수 펑펑 쏟아대는데 그럼 어떻게 하라고?

일본도 오래전 체르노빌 사태 때 소련도 아니고 유럽산 농산물 수입까지 규제한 적 있다. 당시 독일은 자국산 시금치 전량 폐기.

지금도 일본은 체르노빌산 작물은 수입 금지. 과학적 근거 따위 제출한 적도 없는데.

그리고 원산지 위조를 한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이건 그건 본질이 아냐. 수산물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 원흉이지.

또 10개국이 아니라 100개국이 규제 철폐해도 우리가 따라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못 됨.

원전과의 거리, 외교 관계 등 고려사항은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므로.

애초에 모든 나라가 동등하다면 대체 왜 중국이나 미국에는 가만 있는 것일까?

2. 이 건에서 일본이 제시할 근거라 해봤자 검출량에 관한 row data 정도지만

피제소국은 방사성물질이 내부피폭으로 인체에 일으킬 수 있는 온갖 영향에 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할 텐데

지금 인류의 기술 수준에 가능한 거긴 한 것일까? 애초에 이런 문제에서 '과학적 근거'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존재하고 증명 가능하다 해도 어차피 원전마피아 같은 곳에서는 그런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텐데? 

이건 마치 술래(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투명인간이거나 아니면 아예 술래를 숨겨놓은 술래잡기를 하면서

'네가 술래를 잡아와. 안 그러면 혼쭐 날 줄 알아. 싫으면 네가 이 동네 규칙을 바꾸든가'라고 겁박하는 것이나 진배 없다.

규제 지속기간도 그렇다. 일본이 원전 오염수 언제쯤이면 방류 그만할지 알아야 우리도 규제를 지속할지 말지를 알지 않을까?

3. WTO가 WHO인가? 거긴 보건/건강이 아니라 무역 진흥 기구다.

얼마나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한 솔로몬의 집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도 전에 미국에 제소 당해 진 적 있다. 이유는 '과학적 근거' 미비.

걸핏하면 한국이 비논리적이다, '과학적 근거를 갖고 얘기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라고 하는데,

'비논리성' 따위를 특정 국가 전체의 속성으로 자의적으로 치부하고 분쟁의 핵심요소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국제 분쟁이 일어나는 데에는 논리보다 '힘'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4.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화강암질이 많아 원래 자연방사선량도 많다.

아니면 옆나라들 핵실험이나 원전사고 등의 원인+자국내 방사선 유출의 영향도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도 원전은 많으니까.

하지만 여러가지 조건을 통일하지 않고 단순히 한국과 일본 특정 지역의 '순간' 방사능량만 비교해봤자 의미는 없으며,

꽤 지속적으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고 해도 우리가 규제를 철폐해야 할 이유라고 할 수 없다. 체르노빌 사람은 그럼 아무거나 주는 대로 다 먹어야 하나?

 

알고 있다.

별로 반박할 가치가 있는 수준의 답변들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도 정말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꼼꼼하기로 유명한 일본인이라면 뭔가 통찰력 있는 의견이나 내가 모르는 자료 하나라도 알려줄 줄 알고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고 시원찮으나마 댓글을 달아주니 모른 척 할 수만도 없어 피드백했던 것인데,

대충 몇 번 투닥거리고 난 결론은,

'정말 실망 많이 했다'는 것.

어쩌면 저렇게 자국 정부&언론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기만 할까?

대단히 비판적인 반골이 되라는 게 아니다. 삼척동자도 알만한 상식과 최소한의 공감능력이 있다면 어떻게 이 경우에 정부말에 맞장구를 칠 수 있는지?

장문의 반박글을 마지막으로 올렸는데 이제 대답은 커녕 들어가 볼 일도 없을 것이다.

고작 세 명(혐한자 제외)의 짤막한 답변으로 일본인 전체의 수준을 폄하하면 당연히 안 되겠지만

내 글 말고도 다른 많은 관련 글들에 비슷한 의견이 넘쳐났던 것은 걱정스럽다.

몇 명이 이상한 소리를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이상한 소리가 그렇게 많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태평양, 나아가 전세계를 오염시키고 있는데 미안해하지는 못할 망정

거기서 나온 물고기 안 먹겠다는 옆나라를 제소하고

국민들은 거기에 대해 문제 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별로 안 느끼는 (느껴도 그걸 표현하지 않는)

이 나라를 나는 대체 어떻게 보고, 다뤄야 하는 걸까?

물론 선량하고 양심적인 일본인이 많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이 글이 어느 날 보면 겸연쩍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 알았나 싶으면 또 그만큼 내 이해의 피안으로 도망가는 이 나라를 생각하면 적어도 지금은

화도 많이 나고, 또 혼란스럽다.

 

WTO제소는 이미 당했고, 지금은 패널이 설치중이라고 한다.

관련단체 홈페이지도 즐겨찾기해 두었다.

한국 정부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특히 요즘같은 시대에는 더욱 더. (지난번 위안부 협상에 이 정부의 협상 능력과 철학, 그 바닥이 다 드러났으므로)

그럴수록 나라도 두 눈에 불 켜고 감시해야겠다.

어제 다녀온 강연회에서 받아온 심용환씨의 사인을 떠올리며!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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