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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식

오다지마 타카시 <홧술 들이킬 각오, 돼 있나>

레테210 2015. 11. 10. 23:16

 

 

(사진 출처 : 닛케이비즈니스온라인)

 

배우 명계남씨를 살짝 닮은 위 사진 속 주인공의 이름은 오다지마 타카시(小田嶋隆). 일본의 칼럼니스트다. 리버럴한 가치관과 핵심을 짚는 통찰력, 사회적 이슈에 대한 소신있는 직설 화법, 여기에 양념처럼 더해지는 촌철살인의 비유 등 적절한 수사법이 마음에 들어 요즘 그의 칼럼을 종종 읽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나 OOO야'가 뚜렷이 드러나는 글을 좋아하는데 오다지마의 칼럼이 그런 면에서 취향 저격이랄까. ㅋ

 

처음에 아무 정보 없이 그의 글을 읽고 '글 좀 써 본 양반이네'하고 느꼈더니 역시나 일본에서는 알만한 사람은 아는(이 말에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뜻도 있다 ㅎ) 칼럼니스트인 모양이다. 2013년부터 매주 한 편씩 닛케이비즈니스온라인에 칼럼 <ア・ピース・オブ警句(a piece of cake을 살짝 비튼 말)>을 연재하고 있다. 편당 길이가 꽤 되는데 중간중간 몇 편씩 묶어 단행본으로도 출간했다. 방송 출연이나 강연도 하고 트위터 등을 통해 네티즌과 종종 언쟁을 벌이는 모습은 한국으로 치자면 진중권씨와 비슷한데, 여러 모로 논쟁적인 언론인이지만 우리나라에는 몇몇 기사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 말고는 그다지 소개된 적이 없는 듯하다. 여러 종류의 지식인 중에서도 칼럼니스트가 원래 내수용 성격이 강한 직업이라 그런 것인지????

 

아무튼 요즘처럼 일본의 우경화가 걱정되는 때가 없는데 그의 칼럼을 읽고 있노라면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국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고 해도 소수일 것이다. 그렇게 넘어가기는 아까워 블로그 개설 기념으로 최근의 칼럼을 한 편 전문 번역해서 올려본다. 개인적으로 무기를 술에 비유한 대목이 인상깊었다.(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

 

번역은 일단 원문에 충실하되 직역해서 어색한 부분은 의미의 훼손이 없거나 미미하다고 생각되는 한도 안에서 내 식으로 조금 바꿨다.


# 저작권 문제 : 오다지마씨의 메일주소 등을 모르겠는데 비상업적인 목적 하에 한 꼭지 정도라면 양해해 주시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일단 올려봄(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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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술 들이킬 각오, 돼 있나

오다지마 타카시

2015918()

원문 URL : http://business.nikkeibp.co.jp/atcl/opinion/15/174784/091700011/

 

 

915일에 열린 각료회의(국무회의)에서 101일을 기해 방위청의 외국(外局)으로 방위장비청이라는 부서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1800명 규모의 조직을 구성해서 방위장비품의 연구 개발 및 조달, 수출 관리를 일원화하고 비용 절감을 꾀한다. 자위대 부대 운용 업무는 자위관 중심의 통합막료감부(統合幕僚監部 : 한국군의 '합참 정도에 해당)에서 도맡아 하도록 하고 내부 부서인 운용기획국은 폐지한다. 나카타니 방위성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새 조직 밑에서 방위성과 자위대가 더욱 능력을 발휘하여 임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의 보도 내용이다.

 

과연.

방심한 사이 당했다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내 상황 인식이 안일했나 보다.

 

생각해보니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가 무기 등의 방위장비품 수출을 국가전략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언을 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것이 불과 약 일주일 전의 일이다. 

 

경단련이 발표한 제언의 자세한 내용은 경단련 홈페이지의 방위산업정책 실행을 위한 제언’이라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페이지내 검색을 해보면 알겠지만 군수(軍需)’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방위(防衛)’로 바뀌어 있다.


현재 국회에서 심의중인 안전보장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자위대의 국제적인 역할 확대가 예상된다. 자위대 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방위산업의 역할은 한층 높아질 것이며 그 기반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국제경쟁력이나 사업 계속성 확보 등의 관점이 포함된 중장기적인 전망이 필요하다.”

 

이 얼마나 염치없는 말인가.

 

안보 관련 법안 반대 여론이 들끓고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시위대에 관한 뉴스가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마당에 이런 아전인수격 제언을 철판 깔고 발표해 버리는 경단련의 무신경함, 혹은 그 대단한 자신감이 새삼 경악스럽다.

 

그들은 안보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 일본의 군수산업이 첫 발을 떼게 되는 날까지 이미 하나의 '사실'로 계산에 넣어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현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경영계획을 세우고 나아가 정부에 국가전략의 변경을 제언하는 데까지 와 있는 것이다.

 

어떤 생각을 할 때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베이스로 판단하는 사람은, 사람의 생사를 기본에 깔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것이 제아무리 생명을 훼손시키는 플랜이라 할지라도.

 

내 생각에, 빠르면 이번 주 안에 통과될 것으로 보이는 안보 관련 법안은 6월에 이미 통과된 <개정방위성설치법>과 한 세트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과 경단련도 한 팀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무기수출(武器需出)3원칙> <방위장비이전(防衛裝備移轉)3원칙>으로 명칭이 바뀐 2014 4월 바로 그 시점에 이미 오늘의 일들이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뭔가 허무해 진다.

 

<무기수출3원칙>의 재검토는 무기 방위장비, ‘수출 이전으로 단순히 단어만 바꾼 언어 유희가 아니다. 이는 명백한 국책 변경이다. 우리 나라(일본)는 이미 민관합동으로 무기 수출을 국가전략으로 추진하기 위한 노선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게 밖에 볼 도리가 없다.

 

안보 관련 법안을 위한 주변 정리는 이미 진작에 끝난 상태다. 현재의 이러한 방침은 총선에서 우리가 정권에 지금과 같은 의석을 보장해 준 그 시점에 기정 사실화해 버린 것이다.

 

앞으로 자위대(라는 이름도 조만간 국방군으로 바뀌겠지)가 실제 해외에서 전투 행위에 참여할지 여부와 상관 없이, 일본의 산업계에서는 지금까지 손대본 적 없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미 시작된 상태다. 아마도 일본 경제는 전후 일본이 자제해 온 매혹적인 산업 분야에서 거두어들일 수익을 빼놓고는 이제 앞날을 그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죽음의 장사꾼’ 운운하려는 것이 아니다.

, 무기는 술과 비슷하다.

찻집에서 손님에게 술을 팔기 시작하면 그 집은 그때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가게가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화는 불가역적이다.

술을 팔아서 손에 넣을 이익은 취객이 일으킬 귀찮은 일들과 세트로 발생한다.

이를 피할 재간은 없다.

 

뿐만 아니라 한번이라도 술을 팔아 돈을 받기 시작하면 그 가게는 두번 다시 술을 팔기 전의 조용한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물론 술을 팔기 시작하면서 떠나버린 고객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개구리가 올챙이로 돌아갈 수 없듯이 알코올중독 아저씨가 홍안의 미소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뭐, 당연한 얘기겠지.

 

현재 심의중인 안보 관련 법안의 주된 문제는 그것이 애초에 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건대 위헌이든 뭐든 법안은 어차피 조만간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위헌이라 생각하는 학자가 몇 백 명 있다 한들 한번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은 적어도 위헌임이 증명될 때까지는 효력을 계속 발휘하게 된다.

 

어쩌면 법안 통과로 인한 혼란이 거꾸로 정권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국 운영이 다소 표류한다 해서 한번 제정된 법률이 느닷없이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어지간히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안보 관련 법안은 일본의 가까운 미래를 확실히 바꿔놓는다는 뜻이며, 따라서 우리는 안보 관련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후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지금부터 단단히 각오해두어야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 후의 일본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전투 행위에 참여하기 위해서 방위장비(쉽게 말해 무기’)를 갖추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방위장비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전투행위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인지는 사실 분명치 않다.

 

하지만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수단이 됐든 둘(무기와 전투)은 결국 한 몸이다.

 

무기가 전쟁을 촉발시키는 것인지 전쟁이 무기를 요구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고기가 헤엄치기 위해 물이 있는 것인지 물이 있어서 물고기가 헤엄치는지 모르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물이 없으면 물고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뿐.

 

이런 말을 하면 소위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안보 관련 법안이 정비됐다고 해서 바로 전투에 참여할 리가 없지 않나

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과 징병제가 현실화한다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다

무기 소지나 수출이 바로 전쟁을 의미한다니, 무슨 좌익들 망상도 아니고. ^^

전쟁에 대비한 법령 정비와 실제 전쟁을 하는 것이 별개라는 사실 하나 이해 못하는 이 이상주의자를 정말이지 어찌할꼬

무기 대신 꽃다발 들고 가면 시리아나 판문점도 무사 통과할 수 있다는 게 헌법9조 신자들이 믿는 환상이지

 

하는 식으로 딴죽을 걸어온다.

 

물론 전쟁 가능한 태세를 갖추는 것과 전쟁에 참여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그것을 몰라 하는 소리가 아니다.

다만, 전쟁 가능한 태세를 갖추는 것이 전쟁 참여의 중요한 한 걸음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권총을 갖고 있는 것과 그 권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는 것은 전미총기협회가 수도 없이 지적했듯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권총으로 남을 쏴 죽일 수 있다는 것이 권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는 것도 역시 사실이며, 따라서 권총을 갖고 있을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남을 쏘아 죽일 위험성이 큰 상태라는 점은 누가 지적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사실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안보 관련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전쟁에 휘말릴 것이라든가 별안간 징병제가 실시될 것이라든가 그런 것이 아니다.

 

우선 첫 번째로 걱정되는 것은 헌법이 정규 개정 절차를 밟지 않고 바뀌어버려 그 효력( 법의 지배라는 소중한 원칙)을 잃는 것이며, 또 하나는 전쟁을 염두에 둔 법 체제가 즉시 전쟁 그 자체를 유발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시 체제’(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멍청한 작자들이 득세하는 나라라고 표현한 체제)를 초래해서 전시 경제’(나라 경제에서 필수적인 고용과 시장을 군수산업이 장악하는 경제 체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우려는 서로 붙어 다닌다.

 

군수산업으로 인한 이익은 막대하다.

그 이익은 일반적인 상품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기란 것은 일국의 존망을 좌우하는 도구로서, 비용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무기는 의료와 닮아있다.

말기암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믿거나 말거나 식의 대체의학에 큰돈을 쓰는 것은 환자의 목숨이 비용을 초월한 것인 까닭도 있고, 이런 식의 의료가 공포를 기저로 한 산업인 까닭도 있다.

 

무기란 그러한 저주를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총알에는 사용기한이 설정되어 있으며, 무기 자체도 하루하루 그 성능이 저하된다.

이 점을 봐도 무기는 의약품과 닮아 있다.

아니, 오키구스리( : 방문판매원이 미리 일정량의 약을 각 가정에 비치하게 하고 사용된 분량만큼 약값을 받아간 뒤 그만큼 약을 새로 보충하는 식의 판매 방식. 일본 도야마현 지역에서 유래함) 행상이라면 기한이 된 약품을 무료로 폐기하고 새로 채워주지만, 총알 제조 업체는 기한이 다 된 총알을 폐기(혹은 훈련이나 소규모 전투에서의 소비’)하고 새로 채우기만 해도 정기적인 이득을 얻게 된다.

 

또 무기는 가상의 적국이 갖추고 있는 무기와의 상대적 균형 속에서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 장비이기도 하다. 즉 적국이 장비를 새로 갈아치우면 이쪽도 그렇게 해야 무기가 무기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창은 적이 더 견고한 방패를 갖추는 순간 공격력을 잃는다. 방패 역시 적의 창이 더 강한 공격력을 얻게 된 순간 방어력을 상실한다. 즉 적군과 아군으로 나뉜 창과 방패는 영원히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군수산업에서는 무한히 반복되는 재구매 수요가 미리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요즘 XP Vista 썼다가는 해커들 안방 되기 딱이죠.”

 

이런 말을 듣는 순간 재구매는 필수 예산 항목이 된다.

그러면 OS를 재구매할 때 어플리케이션도 메모리도 다시 사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CPU나 마더보드까지, 아예 시스템을 몽땅 들어내야 할 수도 있다.

 

가만 보면, 경단련이 군수산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데에는 경단련이라는 곳이 대단히 제조업 중심적인 조직이라는 점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아래에 소개할 링크는 이토추상사(伊藤忠商事 : 일본의 대표적 종합상사 하나. 1990년대말~2000년대초 거액의 부채와 실적 부진으로 경영난에 빠진 바 있음) 부흥의 주역이자 퇴임 후 민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대사를 지낸 니와 우이치로씨의 블로그인데, 니와씨는 블로그 속 글에서 경단련의 19명에 달하는 회장과 부회장들 가운데 소매업, 서비스업 출신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한편, 일본 GDP의 불과 18%를 차지하는 제조업 분야의 사람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단련의 거버넌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격변하는 세계 경제 속에서 일본 경제의 핵심 조직인 경단련은 구태의연한 상태입니다. 현재의 경단련으로 말하자면 조직이 노후화해서 뒷북을 친달, 시대에 뒤처져있어요. 이 점을 꼭 바로잡았으면 합니다."

 

‘뒷북을 친다', 실로 날카로운 지적이다.

일본 최대의 경제 단체인 경단련이 지금 이 시기에 정부에 대고 국가전략 차원에서 군수산업으로의 노선 변경을 제언했다는 것은, 전후 일본 경제가 평화를 누리며 번영해왔음을 감안할 때 정상적인 변화라고 할 수 없다.

 

어쩌면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어온 일본의 제조업 입장에서 봤을 때 한번 도전해 볼 만한 프론티어가 이제 군수산업에만 남아있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나 경솔한 돌격이 아닐지.

 

아니면 설마, 술취한 건가?